
밥벌이하는 곳에서는 기가톤급 폭탄이 터졌고 (6시 출근! 10시 퇴근! 허억!), 추위는 깊어만가고, 사랑하는 친구가 사실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나를 깊이 증오한다는 것을 깨달은 겨울, 2004년 12월.
요즘 이렇다. 내 인생의 이야기 이번 챕터는 이토록 참담하게 흘러간다. 나는 이 이야기, <홍당무 인생의 이야기: 별 볼일 없음>을 쓰는 작가가 완전히 개심하여 이야기의 분위기를 갑자기 밝게 바꾸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, 진짜 인간적으로다 양심이 있다면 다소의 코믹한 에피소드 한 두 개 정도는 - 사식 넣어주듯 - 좀 집어 넣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, 하는 생각은 한다.
와중에 <당신 인생의 이야기>(테드 창, 김상훈, 행복한 책읽기, 2004) 읽다.
신에게 가 닿는 수직의 물리적인 교량을 건설하려고 애쓰는 바빌론의 경건한 기술자들에 관한 이야기 <<바빌론의 탑>>에서, 힐라룸은 마침내 신의 정원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지만 곧바로 그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도로 지상에 내팽개쳐진다.
21세기의 최신과학이론을 알고 있는 독자는 이 사건을 누구의 의지도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물리적 경이로 바라볼 수 있지만 그러나 경건한 기술자 힐라룸은 그 경이를 신에게 귀속시키지 않을 수 없다. 물리는 종교로 해석될만한 여지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.
<<당신 인생의 이야기>>의 헵타포드들은 시작과 끝이 없는 문자언어를 구사하는데, 이 문자의 체계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한데 뭉뚱그러진다. 헵타포드들이 이 체계로 사고하고 이 체계로 그들의 우주를 구성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인류가 그토록 탐내는 그들 과학, 우주여행의 비밀이 거기 있다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닌가? 동시성 synchronicity 의 개념은 전혀 철학과 심리학에 한정되어있지 않다. 그것은 어쩌면 자연과학이다.
<<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: 다큐멘터리>>는 차이의 미학과 정치학에 관한 지라르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. 내 경험안에서 그것은 그 분야의 가장 인상적인 이론으로, 요컨대 차이를 유지하거나 줄이려는 인간의 욕망은 너무나 근원적인 것이어서 심지어 리비도에도 우선한다는 것.
밑줄 그은 유일한 문장은 <<지옥은 신의 부재>>의 것.
"닐과 같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죽으면 갈 곳은 지옥밖에는 없었고" (300p)
가장 괜찮은 문장이라서가 아니라, 늘 그렇듯 내 얘기라서, 그었다.